어린이 유학의 허실 교육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자녀를 유학길에 올려놓은 것 같다.

여기서 '어린' 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초중등생을 말한다...


미국에 연고가 없는데 어린아이 단독으로 유학을 보내시는 것은 많이 많이 숙고하셔야할 문제인 것 같다. 연고가 있다 하여도 이모이건 삼촌이건 그들도 자신의 생을 살아내는데 바쁜 나라인 것은 매한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여야지 친척에게 맡긴다는 것도 좀 그렇다... 물론 우리가 어린 1학년짜리 조카를 우리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한 적은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돌본 기간이다. 내가 해주는 것과 해달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 흠...


이 나라의 학교가 들인 노력과 재원에 비하여 너무 고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 치러지는 구도라, 같은 돈을 들여 더 양질의 교육을 받지 싶은 마음이 왜 안들까... 게다가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다른 땅에서, 좋은 선생님들의 유형을 이미 많이 보고난 뒤라, 내 눈에 그리 훌륭해보이는 교사들을 많이 발견하지는 못했다. 담임교사에게 시달리는 아이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모른다!! 한 해동안 내 자식과 마찬가지로 애정을 가지고 이뻐하며 길러야 하는 소명을 가진 분들이, 정작 가장 괴롭히는 존재가 되어 있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르실거다... ㅠ 오죽하였으면 지금도 만약에 암행어사 제도가 있다면 학교의 교사 답지 못한 교사들을 그 자리에서 당장 교문을 걸어나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최소한의 자신의 일도 안하시는 이들도 그리 많으시다. 휴...물론 언제나 양면성은 있는거니까 정말 훌륭한 선생님들이 묵묵히 사랑을 가득 담고 자기자식 만큼 제자에게 훈육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거다. 내가 직접 뵙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어린 자녀를 부모 슬하에서 떼어내 다른 나라로 보내시는 것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셔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그 곳에 살며 유학 오는 학생들을 많이 지켜본 바로, 만약에 내게 묻는다면 나는 부모와 자식은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것 같다. 부모자식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기간도 가만 생각해보면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런데 그 시절을 함께 공유하지 않고, 내 복으로 주어진 그 복된 기간을 누리지 않고, 어린 시절에 내 품에서 떼어 다른 나라로 그리 떼내어 보내버린다면, 너무 아깝다!!!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살면, 자녀의 성장기에 마땅히 일러주어야할 가치관이나 서로의 생각이나 이런 부분을 전혀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이 값을 나중에 치르는 모습을 정말 많이 지켜보았다. 누구와의 사이도 그러하지만, 특히 부모와 자식도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정이 들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일수도 있는데, 어린 시절에 보내버리면 점차 자식은 손님처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나빠서도 좋아서도 아니고, 그냥 누구라도 그렇다!


경우야 약간 다르겠지만, 남편은 고교시절부터 서울로 유학을 나가, 방학에만 집으로 귀가하는 그 시절의 유학생이었는데(지금 유학생의 거리는 상당히 길어진 것이다.^^), 고1부터 아들을 떼어낸 이후로 내내 객지생활을 한 장남을 시어머니는 늘 어려워하셨다. 그래서 갓 신혼시절에도 아들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으시면, 남이다가 이제 막 가족이 된 며느리인데도 내게 말을 하셔 당신의 장남에게 말해달라고 하셔 그 시절에는 참 이상하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도 자식이 어려우셨던거다!! 함께 공유한 시간들이 적어서 그런지 어떤지 내내 그러셨다.

사는 곳이 연구단지이다보니 단위면적당 미국이나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구성원이 상당히 많은 동네다. 딱 지금이야 오히려 그 시절의 그런 부류가 이 곳에 오는 것 같지는 않다.ㅠ 왔다가는 다시 외국으로 다시 떠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입맛이 쓰다...

젊은 날에 유학시절을 거친 사람들이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곳 유학지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의 한 4학년쯤이 되면 슬슬 바람이 들어가다가.... 아빠들이 한 해 동안의 SEP이나 안식년을 기하여 가족들과 함께 한 해쯤 나간다 하면 그 다음이 보인다. 데리고 간 그 자녀들이 외국의 학교생활을 체험해버리고 나면 그 1년이 끝날 때쯤 이국에서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자신들을 거기다 그냥 두고 부모님만 귀국하시란거다. 허 참... ㅠㅠ 어떠했으면 아이들이 그 만리타국에서 혼자 남는다는건가 말이다!!!... ㅠ


다행히 부모가 이겨서 자식을 무사히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와도, 한국생활이 편치가 않다. 아이는 매일 하교하여 울음으로 호소하고 부모는 괴로워하다가... 한 해가 지나가기 전에 자식을 위한 인생을 열어준다며 아이는 다시 초등 5학년이나 6학년으로 그 외국으로 되돌아간다.... 심지어 3학년 4학년인데도 떼어보내는 경우도 봤다...


이런 유형이 너무도 많아서 놀라운 일들도 아니다.

이제 시간이 흘렀으므로 그 결과도 보이는 즈음이다. 일단 아이를 미국으로 되돌려보내는 순간, 그 부모들은 그 부모들에게 대단한 유산을 상속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 한 아이를 뒷바라지 하느라 다른 가족들의 고충이 시작된다. 부모는 제대로 돈이란걸 써보지도 못하고 송금이 시작된다. ... 시간이 더 흐르고... 유학을 다시 가 그 혜택을 받는 아이가, 그러면 가족들에게 감사해 하느냐 하면 자신이 혼자 외롭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고 자기도 힘들었다고 화를 낸단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 울며 불며 보내달라던 때는 언제고..." 그 엄마의 말이다. 그 말을 그 엄마가 할 때, 사실 나도 막 그 말이 입에서 나가려 할 뻔 했다. 아이가 어리던 당시에 고민을 많이 하던 그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그리 보내달라던 때는 언제고...


물론, 그 아이 말도 맞을 것이다. 혼자 어린 나이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 것인가? 가족이 함께 있으며 보호막도 울타리도 없는 느낌으로 혼자 황량한 들판에서 혼자 뚫고나온 것 같겠지! 미국학교는 초중고교가 귀가하는 시각이 3시45분, 3시, 2시30분이다. 수업 종치는 시각이 아니라 스쿨버스가 움직이는 시간을 대충 써본 시각이다. 해가 훤하게 있는 시각부터 스쿨버스를 타고 귀가하여 그 나머지 시간들을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부분에 가면 ...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여하튼 이렇게 어린 자녀들을 외국으로 보낸 엄마들은 "내가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내 가슴 속을 열어보인다면 숯검뎅같을 거"라고 말들을 했다. 가장 고뇌스러운 부분은 홈스테이란다! 아이가 집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홈스테이하는 가정들의 유형과 면면을 알려주는데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자기 자식을 기르는데도 쉽지가 않은데 남한테 무얼 기대하시는가...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이미 익히 알던 사이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면서 내 귀한 아이를 어떻게 남의 말만 듣고 그리 용감하게 날려보내는 거지?? 홈스테이의 여러 유형을 거치며 아이는 피폐해져가고 부모의 마음 속은 숯검뎅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초등4학년에 아이가 그리 원한다며 외국으로 홀로 가서,.... 이런 저런 시절들을 보내고 아이가 대학을 그 나라에서 가고.... 그리하여 만난 자식들은 사고방식이 그 나라화되어 서로 이해못할 해프닝들이 생긴다는 것! 그렇게 하소연하던 아이들을 정작 만나보면, 여전히 그 아이들은 어릴 적에 내가 보던 그 기질들이 보여 이쁘지만... 부모들은 속으로 그리 struggle하는 시간을 보내온 것이다. 한 마디로 부모는 번 돈의 대부분을 자녀에게 쏟아붓고, 노후준비도 착실하게 하질 못하고 시간은 한참 흘러 있는 것. 솔직히 요즘 세상에 스티브잡스과가 아니고야 대학을 나온다고 하여도 어느 나라든 불경기이고 대학을 나왔다고 고액연봉을 받아 척척 그럴 수 있는 아이들이 몇%나 될까... 그 자식이 자라 내 노후를 책임져주겠지 하는 것도 인생의 시절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세월에?? ㅎㅎ 이리 저리 하여도 그 신부님 정말 전 인생의 흐름을 정말이지 잘 간파하셨다.^^ <사는 맛 사는 멋>을 쓰신 황창연 신부님 말이다.^^ 읽으면서 정말 웃는다.ㅎㅎ 언젠가 그 신부님이 하신다는 생태마을에 꼭 가보리라.



어린 자식을 품에서 떼내어 보내지 마시라!

그 날 부터 맘고생이 시작되는 날이니.

이거 너무 심했나??

'어린'을 주의해서 보시길!! 뭐 만 19살이 되는 성년 즈음이면 오히려 멀리 떠나보내시라. 한국학제로 한다면 대학생이 되면서 멀리 떼내어 보내도 되는. 이미 부모와 자식 간에 애틋한 정도 다 들어있고,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법도 서로 전수가 되었으니...^^

고생해본 자식이 더 효자가 된다. 너무 받들어 키운 자식은 절대로 자기몸 고달프고 내 시간을 내어주고 내 주머니에서 내가 쓸 돈을 양보하여 부모에게 주는 그런 희생(??)을 못한다. 태생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가 고생을 해보고, 하면서 철이 나고 심성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자식이 성년이 되고, 대학 쯤에 품을 떠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 한 것 같다. 말그대로 성년이니 그 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인생의 길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덜 의존적인 자식으로 길러내는 것도 같으니.

자식이 귀하고 소중하여 내내 해줘 버릇을 하면 그 '정신적인 이유기'를 놓치는 부모들도 상당수다. 이 시기를 놓치면 자식의 결혼도 자립도 다 부모의 손을 빌어 하는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황상연 신부님의 <사는 맛 사는 멋>이란 책을 자녀들이 어릴 때, 미리 한 번 꼭 보시길 바란다. 인생의 그 다음 자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거기 사례연구가 정말 많다. 그 사례들을 읽으며 누구의 잘못인가 생각해보았더니 오히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식의 잘못이 아니라, 제 때 떼어내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무조건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다 퍼주고 싶은 마음에, 절제하지 못하여 결국 자식이 스스로 설 기회를 박탈해버려 자신의 생을 독립적으로 나아가는 도정을 방해해버린 것은 아닌가... 그 시기에 무엇이든 많이 해주면 다 좋을 것 같고 자식의 미소를 보지만, 그 다음 단계로 가면, 그렇게 길들여진 자식, 이제 자식의 요구가 시작되고 노인이 된 부모들이 당하는 꼴이 참 ... 멀리갈 것도 없이 주변에 부지기수로 본다. 우리 또래 누나들을 만나면 그런 남동생이나 오빠 하나쯤 가지지 않은 가정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그리 하셨다.



무어든 농사도 그렇듯이 자식의 교육도 때 맞춰 씨를 뿌리는 과정부터 농사짓기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물론 제대로 농사도 지어보질 못한 이가 이리 말하면 주제넘지만 말이다. 틱낫한 스님은 그 바쁜 와중에 야채밭을 가꾸시는 모양인데, 어떤 이가 "스님은 그 시간에 그런 하찮은 일은 하지 마시고 그 시간에 차라리 시나 글을 쓰시라" 했더니, "내가 이 밭 가꾸기를 하지 않으면 글도 나오질 않는답니다." 하셨다고.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 그저 꽃화분 몇 개를 길러보아도 알겠다!



마침 어린 아이를 미국에 보내놓고 조언을 부탁하셔, 며칠이 지나도록 아직 답장도 못쓰고 이런 전체적인 개요나 말하고 있네. 나는 "이제 겨우 한 해도 안되었으니 그 경험을 감사히 여기게 하고, 얼른 당장에 이 학기가 끝나는대로 부모 슬하로 돌아오게 하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안들을 것이다... 자신은 아끼지 않고 그저 뒷바라지를 할테니 거기서 공부를 잘하고 직장을 잘 잡아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큰 욕심은 없다고.... 어찌 하면 이렇게 무조건적인 말이 나오는가... 이를 어쩌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 제목이 생각나는구나...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사는 정과 관계'가 정말이지 중요하고, 성장기에는 할 수만 있다면 그 기회를 백 번 활용하여 서로를 누리고, 따뜻한 사랑을 듬뿍 주고 받은 아이들이 결국에는 정서안정에다 속이 굳건하게 꽉 차, 나중에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만 자꾸 든다....

하지만 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결국은 자기가 가장 원하는 대로 결정을 내리고 행하는 것이겠지.


이중언어 습득에 유리한 방법론? 교육

맏이가 nursery school을 가게 되자 금방 영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지금도 girl 이란 단어와 skeleton 이란 단어만 보면 맏이의 아가시절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막 유아원에 간 참인데 며칠도 되지 않아 내가 동화책을 읽어주며 발음을 하자 손을 흔들며 "그게 아니야" 하면서 내 발음에 딴지를 걸고 나왔다. ㅎ 똘망똘망 발음해주던 모습이라니...ㅎㅎ 발음해주던 그 정확하고 앙징맞던 발음과 아이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신기하였던지.... 나도 한국인인지라 이 단어가 R과 L이 연속으로 연결되어 나오는 발음이니 엉터리로 발음 하는게 아이 귀에 잡혔나보았다.ㅎ 그게 아니라고 손을 훼훼 저으며 "따라해봐~" 하더니 열심히 아이가 말하고 내가 말하고 몇 번을 따라 발음해보았던지... 하하하
아니! 이 아이가 지금 만 21 달 인데 어찌 이 발음이 이리도 정확하게 나오며 나를 가르치는가... 그날 저녁에 귀가한 남편과 이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에게 발음을 해보라니 씩씩하고 의기양양하게 고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말하던 저녁식탁이 생각나네! ...

어느 날엔가는 어린이 자연사 박물관엘 갔다. 갑자기 아이가 해골모형을 가리키며 정확하게 '스켈레톤(skeleton)'! 하는거다. 너무 작고 어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발음을 하자, 지나가던 좀은 더 큰 아이들을 기르는 미국엄마 아빠들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는 쪼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곤 아이에게 이것 저것 묻고 마음껏 칭찬을 해주던 단어라 그 자연사박물관의 어느 지점과 함께 휘리릭 떠오르는 것이다.ㅎ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 아이들의 언어가 우리의 최대관심사인 시절이 이 시절이다.
이중언어에 효과적이었던 환경을 연구한 학자들은, 부모가 자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마이노리티 언어 (Minority Language)만 쓰면, 이중언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할 가능성이 더 놓고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즉, 미국에 사는데, 부모가 한국어를 쓰면, 아이는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이중언어로서 자연스럽게 습득장치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집에서 부모 둘 다 영어를 구사하거나, 혹은 한 부모는 영어를 쓰고 다른 한 명은 영어와 동시에 일본어까지 아이에게 써주면, 아이가 이중언어를 원할하게 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일본의 연구다. 일본에서 사는 영어권 가정의 이야기인 셈-우리 부부(미국에 사는 한국인부모)가 구사한 방법이다. 각 언어가 달라질지라도 같은 패턴일 것이다.


아이가 학교엘 가자 급속도로 영어는 유연하고 물 흐르듯 유창하여 우리를 자주 놀라게 하였다. 유아원을 보내고 사흘이 지나지 않아, '엄마'가 '맘(Mom)'으로 바뀌고... 사는 땅이 미국이다보니 점차적으로 영어만 쓰기 시작하였다. 그 때 우리는 학생이었고 영어로만 살아남던 시절이었음에도, 아마도 모국어에의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나보았다. 아이가 '맘'이라고 불러 내가 받아주는 모습을 본 어느 저녁, 남편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이제 맘이라고 부르면 대꾸를 해주지마. '엄마' 라고 부르고 한국어로 말을 해야 들어주자. 저렇게 영어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금방 영어는 원할해질텐데... 한국어가 더 ... 시급한 문제야!" 듣고보니 옳은 말이라... 아이가 mom이라 부르면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라고 시작하면 돌아보았다.^^ 자신이 무언가 필요한데 mom으로는... 영어로는...우리가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자, "아빠" "엄마" 라고 말하고 요구사항도 한국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 이런 논문을 읽은 적도 없지만, 젊은 우리 생각에 아이들이 미국에 살 때, 우리의 의사소통 언어는 한국어로 쓰게 하고, 한국엘 오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하였다. 밖에만 나가면 그 언어가 있으니 적어도 집안에서 우리끼리는 현재 밖에만 나가면 있는 언어(Majority Language)가 아닌 언어(Minority Language) 쪽을 쓰게 하였다.
사실 지금도 그런 식이다. 미국에 가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한국에 오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 식구들끼리 있을 때는.

막내들이 중학생일 때는, 나는 미국에서도 한국어로만 말하고, 아이들은 영어로만 말하며 두 언어로 대화하는 시절도 있었다. 마침 한국에서 방문한 친지가 우리 차를 탔다가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적이 있다. 나는 사실 그 순간 왜 그리 놀라는지를 몰랐다. 엄마는 한국어로만 말하고 아이들은 영어로만 말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알아들으니 그게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하여... 그제야 아~ 했었다. 아이들이 더 어리던 시절에는 미국에서는 가족간의 대화에서는 무조건 완전히 한국어로 말하게 하였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지금 아이들은 두 언어를 원할하게 말한다. 이중언어가 된 셈이다.
이중언어를 구사하게 하려면 '필요성(necessity)'과 동기유발(motivation)이 중요하다라는 표현도 이 책에는 있다. (The Handbook of Bilingualism)

우리가 유학시절, 동네에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연령의 꼬마아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젊은 부부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이의 언어를 놓고 자기나름의 논리로 아이들의 언어세계를 가르쳐나갔다. 같은 화학과 동료인 네 가정조차도, 각자의 언어교육에 대한 소신이 다 달랐다. ㅎ
그 중 한 가정은 부부가 다 일치되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여기는 미국이니 영어를 잘 해야하므로 자신들은 한국어를 하나도 안쓰고 영어로만 말하게 하노라고. 아이가 한국어로 "엄마"라고 부르면 안쳐다본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우리 가정과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ㅎㅎ

또 다른 한 가정의 경우, 엄마가 영어를 전혀 모르고 안쓰는 경우의 아이는, 당연히 집에서 한국어로만 써지고... 그 아이도 이중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엄마의 그 자랑스러워하던 표정도 기억이 나네... 외국어권에 살며 엄마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별로 아이에게 그리 마이너스 요인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 기억도 있다.
해가 지나갈수록 점 점 달라졌던 것은, 놀라운 사실은, 집에서 영어만을 받아주는 가정의 아이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안쓰고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집에서 한국어를 고집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두 언어를 다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즈음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언어를 습득하는 폭은 개인적인 차이도 있을 터이니 일방적으로 무어라 말하긴 힘들지만, 부모의 자세나 마음가짐이 아이에게 적어도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즈음의 이런 저런 경험이 있는데... 마침 이런 사례를 뒷받침하는 논문과 책을 맏이가 찾아 읽다가는 내게 이멜을 보내왔다. 엄마가 관심있어할 거라는 부언과 함께!^^ 이 부분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학생 그룹에서는, 자신들이 첫 세대로 미국을 살아내며, 영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니 그 아빠는 자신의 아들이 영어를 미국아이들과 견주어도 유창하게 하길 원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우리 경우에는 이 아이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며, 영어는 나가기만 하면 쓰는 현지언어(Majority Language)이니, 집에서 굳이 쓰지 않아도 배우게 될 거라는 낙관론을 개진했었다. 물론 누구도 누가 옳다거나 하는 의견을 개진하진 않았다. 자신의 소신껏 하는!!^^

그간, 혹자들은, 어릴 때부터 이중언어를 하는 것이 득(得)보다는 해(害)가 된다, 이중언어를 하려다가 한 언어도 잘 안된다, mental development가 제대로 잘 안된다... 설이 많았는데, 그런 것은 기우이며 연구결과로는 실보다는 득이 많으니 하는 것을 권장하는 글들을 읽었다.
부모가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 아이는 '필요'에 의해서 그 언어들을 구사하게 되고, 결국 이중언어가 원할하게 되며, 지능자체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나, 언어지식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으며, 한 언어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이득은 있으리라 본다. 그동안 이중언어를 구사하면 나는 지능이 더 좋아진다는 학설로 그간 알아왔다. 이 부분은 더 조사해보아야겠다. 흠...

원래 언어를 잘 하는 것에, 나이 지능 등은 덜 중요하고, 필요성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좋은 귀(good ear) 기억력(good memory) 꾸준히 열심히 하는 성실성(a capacity for self-initiated application)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적응력,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 등도 물론 중요하다. 하긴 이것들은 언어습득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든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하지만, 결국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동기유발(motivation)과 기회(opportunity)라는 견해이다. 이즈음의 학계흐름이다. 참고하시길! ^^

언젠가 캄보디아에 사는 이웃이, 너무 신기한 일이 있다며, 캄보디아인 엄마와 네덜란드인 아빠, 사이의 5세 남아가 주변에 있는데, 엄마는 영어를 쓰고, 아빠는 네덜란드어, 보모가 캄보디아어, 네 언어를 원할히 fluent하게 구사하여 신기하다고.. 최근엔 중국인 친구와 놀더니 중국어까지 구사하기 시작한다는 사례를 보내왔다. 이중언어 정도가 아니라 3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며, 사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가 어떤 경로로 그런 결과가 나와지는지 궁금해 하였는데, 그 질문에 대한 약간의 답이 되겠다.
만약에 현재 사는 장소가 영어권이라면, 밖에 나가면 영어를 주언어로 사용하는 환경일테니, 그냥 엄마가 한국어로만 사용하여도 아이는 필요에 의해 한국어를 쓰게 된다는 것! 하지만 가설이기엔 실제로 효용성이 있어보이고, 실제 우리집에서 구사해본 방법이다. 참고가 되시길 바란다.

이중언어습득에 '필요성(necessity)'과 동기유발(motivation)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참고;
The Handbook of Bilingualism - Tej K. Bhatia (Ed.) & William C. Ritchie (Ed.)
De Houwer, Annick (2007). Parental language input patterns and children's bilingual use. Applied Psycholinguistics, 28, 411-424.
Sirén, U. (1991). Minority language transmission in early childhood, parental intention and language use. Un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Stockholm University, 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Yamamoto, M. (2001). Language use in interlingual families: a Japanese-English sociolinguistic study. Clevedon: Multilingual Matters.

한국남자 세상 사는 이야기

우리 아파트가 재활용을 하는 날이라, 이른 아침에 재활용할 것들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한 번에 다녀오려 뭉치는 세 개쯤 되었는데...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거기에 한 정장 입은 신사가 서 있다. 내가 세 뭉치를 가지고 타려는 것은 누가 봐도 짐작이 되는 일인데 뻣뻣하게 그냥 서 계신다...
잠시 문을 눌러달라 부탁하자 그제야 문열림 부분을 누르고...

1층에 닿아 나가려는데....마침 비서로 보이는 이가 1층 엘리베이터 문앞에 섰다가 이 신사의 얇은 가방을 얼른 받아든다. 뚝뚝한 표정으로 내 짐을 건너 나가더니...나는 혼자 낑낑하며 한 발로는 문을 누르고 짐을 여전히 내리고 있는데...그 신사가 다시 온다. ㅎㅎ 혼자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래도 신사는 맞나보네. 도와주러 오나봐...'
왠걸...내가 내리는 짐을 얼른 내리라더니...집에 무언가를 놓고온게 있어 도로 타려는거였다.ㅎㅎ

슬그머니 무슨 저런~~ 드라마 <마이걸>이던가?
거기 이다해가 자주 하던 액센트로 "저~~런~~"

그때부터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가?' 내리는 층을 유심히 봤다. 15층?? 내 대학선배의 남편이다. 우리 남편과도 한 연구소에 근무한... 이전에 그러고보니 연구소의 관사에서도 한 동에 살았었다....두 번째 미국행 바로 직전에...

짐을 드디어 재활용터에 내놓고 둘러보니 그 신사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고, 그의 기사가 여전히 조아리고 섰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저 분 지금도 *******에 근무하시는지요?" 그랬더니,
"지금은 거길 나오셔 **에 근무하십니다." 기립자세로 말한다.
"거긴 뭐하는덴데요?"
"군수물자, 무기를 만드는 곳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고 올라오는데...입맛이 쓰다.
무기를 만드는 곳이니 배려는 필요없는 곳인가??

한국남자들이 너무 배려가 없고 뚝뚝하고 가부장적이라며, 미국서 공부하는 우리막내들을 보기만 하시면 우리 어머니는 미국사람을 신랑으로 찾으라 하신다나? 우리 모르게 자주도 그러신단다...엥?? 나는 내 어머니가 그러신지 얼마전에야 알았다!!
"우리는 늘 그냥 동족을 남편으로 찾으라고 주문을 넣고 있는데....무슨...!!" 그래 왔다. '사람나름이지...'하면서....
한국청년 중에도 배려깊고 속깊은 청년은 반드시 있을거라 철썩같이 믿으면서...각 각 딱 한 명만 있음 되는데 뭘....단 한명이 없겠어?? 이러면서...^^

가만!! 지난 10년의 한국살이를 생각해보니....가만~~ 아직 별로 탐나는 아이들의 신랑감을 본 적이 없다!! 이를 어쩌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맘도 자꾸 변하여 이즈음은 많이 달라져 있다.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보기에 좋아보이는(부모면 그냥 알지않겠는가?!) 청년이면 되지 않을까?!^^...

아까 그런 시츄에이션에 내 남편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봤다.
아마도 뭉치가 세개는 되니 자기가 남자니, 둘 쯤은 번쩍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밖으로 내려놓는 정도는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낑낑거리는 이웃을 나몰라라 그러진 않았을거다...
그건 안다!!

언젠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차량통행이 꽤 많은 사거리 대로변 딱 한 중간에 술을 무지막지 먹은 한 노인이 털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다 피해서 갈 뿐 누구도 그 노인을 어쩌지를 않았다...한 2분 정도 달리더니 차를 도로변에 대어놓고 달려간다. "그대로 두면 저 노인이 생명이 위험하겠어. 해도 지는데..."
그 노인을 도로 가로 부축하여 나오시게 하고 얼른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드릴테니 전화번호를 말하라 하여도 노인은 고개만 흔들 뿐,,,
"연락처를 보기위해 실례하겠습니다." 하더니, 주민등록증 하나 달랑 있고...텅텅 빈 지갑을 본 남편은...
결국 남편은 경찰에 연락해놓고 자신의 지갑에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 그 노인의 지갑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경찰이 와서 그 노인을 모셔갈때까지 기다렸다 길을 다시 갔다.


그날은 연말 모임이라 우리 둘다 모처럼 성장을 하고 나선 날이었다. 노인은 술취하고 역한 냄새를 뿌리는데 아랑곳을 않고 그 노인을 안고 부축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참 사람 하나는 잘 보았다 란 생각을 했었다...그 날 그 때, 내내 나 몰라라 하던 노인이 막 헤어지려는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나는 그 순간, 예수님의 미소를 본 것만 같아 가슴이 다 두근거렸었다. 그 노인의 미소!!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는 딸들이 심성이 아빠같은 사위만 찾아오면 된다고 말하곤 한다.

미국 남자들?
당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가 짐을 세 개나 들고 낑낑하면...당연히 "May I help you?" 한다!!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어디를 가든 내 손으로 문을 밀고 들어간 적이 없다. 늘 누군가 멀치감치서도 달려와 문을 열고 기다려 주었다. 나는 밖에만 나가면 늘 웃고 다녔다. 아니 문을 그리 달려와서까지 열어주는데 내가 미소띄며 감사하다 말하지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동문회를 통 못가보았는데...나는 이제 그 선배를 보면...선배가 좀 더 편하게 해준다면 오늘의 일을 농담처럼 이야기하겠지...어찌 남자가 그럴 수가 있냐고 말이다.

이 글을 아마도 첫째가 본다면 이럴거다.
"아이쿠 참~~ 엄마는 '남자가 이래야 한다'는 로망을 깨세요!! 학교서 얼마나 어화둥둥 내사랑..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나만 아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바랄 걸 바라셔야지요!!" 이럴거다. 아마도!^^


이 아이가 언젠가 일로 나와 함께 내 모교를 갔다가, 길 묻는 우리에게 주차장까지 먼발치서 에스코트하듯 배려있게 길알림을 해준 두 청년을 보고는... 감탄에 또 감탄!! "나 이 학교 올걸 그랬어!! 남자가 저러니 인물을 떠나 얼마나 멋져!! 우리 학교엔 저런 남자들 없어."


어찌 된 일인가 하면, 그 청년들 길을 알려주고는 나중에 가만 보니 저~ 뒤 먼발치에서 같은 곳을 오고 있다.
그래서 궁금하여 내가 물었다.
"아니? 같은 곳을 가는데 같이 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먼발치에서?" 그랬더니
이 청년들 대답, "숙녀분들께서 시커먼 녀석 둘이가 괜히 가까이 따라붙어 이 컴컴한 주차장을 가시면 혹시라도 불안해 하실까봐... 잘 가고 계신지 살펴보며 왔습니다. 길이 생각보다 복잡하여 혹시 다른 곳으로 가시면 다시 알려드리고...아! 저희도 여기를 지나서 가도 되는 길이었습니다.^^"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청년들 외모가 그리 장대하거나 꽃미남도 아니고 평범한 외모였는데, 속깊은 배려에 나도 순간 얼마나 잘생겨보이던지 말이다!!^^


아들 키우시는 분들, 부디 씩씩하게 남자답게 배려깊은 사람으로 좀 ...부탁드린다...^^

자신감; 막내의 초등 2학년 단어테스트 교육

지금 '또래 아이들'을 위하여 이전 이야기를 좀 하자!!^^
막내들이 한국서는 초등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엘 가서는 반년을 올려 초등 2학년이 되었다. 초등 2학년인 쌍둥이 아이들 공부하는 걸 지켜보니, 얼마나 룰루랄라인지  지켜보며 계속 웃음이 나왔다.
직전에 한국의 사립학교를 다니며 수녀님들의 엄한 지도를 받으며 은근 스트레스를 받다가 갔으니, 그 자유함이 얼마나 더 했을까!!...^^

말도 못하고 듣기도 안되고 낯도 설고 힘들라치면 힘들 여지는 너무도 많은데...세 아이 다 학교가는 게 신이 나서 간다....어느 날에 너무도 궁금해서 "니네들 영어도 잘 못하는데, 학교 가서는 어떻게 지내는거니?" 물었다. ㅎㅎㅎ

답은 이랬다. "눈치 코치로 다~듣고 손짓 발짓으로 다~ 통한다" 는거다. 심지어는 5학년이던 맏이는 학부모 참관일에 가보니, "일루 와" "이게 뭐야?" "가자~~" 등등 기본 일상어를 한국어로 가르쳐놓아 한국어로 말하며 신나게 미국아이들과 몰려다닌다. 엥?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미국에 가서 한국어를 전파하고 있다...

게다가 색종이 접기 실력을 발휘하여 개구리도 접어주고 난초꽃도 접고 심지어는 작은 piece를 만들어 조립하듯 만드는 동그란 방울 만들기, 학까지 접어줘서 미국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섰다. 개구리는 접어서 톡 튀기면 튀기까지 하니 완전 다 넘어간다...ㅎㅎㅎ



둘째가 만든 종이방울


학교에서 <학부모_ 교사 모임>에 오래서 간다니까, 선생님들한테 학교이름을 '올모스트 헤븐(Almost Heaven School) 학교'라고 이름을 바꾸면 좋겠다고 전해 달래나??^^
마치 청문회장처럼 예닐곱 분의 선생님들이 쭉 일렬로 앉아계신 방으로 들어섰다가 순간 어이쿠!! 했다.ㅎㅎㅎ

알고보니, 외국에서 온 세 아이들의 학부모가 온다니,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관련 선생님들이 다 들어오신거다. 거기에는 ESL선생님까지 앉아 계셨다. 각자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끼신 점이나 전달사항을 알려주시길래, 들고간 메모지에 다 적었더니, 그 중 누군가가 너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남편의 하는 일이야 알고 계셨던 모양인데 엄마도 궁금하셨나보았다.^^그래서 미혼때, 교사를 하였다고 하니 갑자기 긴장들을 팍 푸시더니...ㅎㅎㅎ 뭐랄까 동료의식 같은 친밀함과 유대감까지 전달되더니 급 화기애애...나라를 초월하여 동료의식이 발현되는 체험을 하였다.^^



그 쯤 하여 학교 이름 Almost Heaven School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기 애들은 아닌데?" 하신다. 한국서는 학생들의 태도가 어떠냐고 물으셔, "한국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수업 중 태도는 교실에서 발을 책상 위에 올리는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낸다" 라고 하였더니, ㅎㅎㅎ "우리 모두 Korea로 교사하러 가자~~" 하셔서 모두 함께 웃었다!!( 후에 내가 거기서 12년을 산 후, 귀국하여 한국의 교단이 달라져 있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겠는가!!ㅠㅠ) 이국의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로 기분좋은 면담을 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하늘을 나를 것 같았었다...


애초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막내 이야기! 최고로 고집 센 우리집 막내.^^
미국 초등 2학년으로 들어간 막내가 알림장을 써왔는데, 완전 그 내용을 '그려서draw' 왔다.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고....글씨체도 미국선생님들의 알파벳 쓰시는 형태가 쬐끔 다르시니 자기 딴엔 따라서 '그려온' 모양!!ㅠㅠ 저녁마다 아빠는 막내의 알림장 단어사이의 띄어쓰기부터 사선으로 그어야 했다.^^ 구획을 지어놓고서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거다. ㅎㅎ

그런데 가만 보니, 금요일마다 영어단어 받아쓰기를 하는 눈치...일주일에 한 번 12개의 단어를 받아쓰기 하는 모양인데...단어의 난이도는 세글자 단어들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단어의 난이도를 보여드리겠다. 리스트를 참고하시라...( **이 부분, 이 시험친 종이를 귀여워서 가져온 것 같은데...서재 정리를 다시 한 번 하며 찾아서 보충사진으로 올려야겠다.^^)




12개의 단어를 다 맞았다!!
우리 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염화시중의 미소로 우리가 나눈 눈빛대화다!!^^
띄어쓰기도 안되는 아이가 단어시험을 어찌 다 맞는가!!

백점 받아온 단어를 아빠가 다시 재시험을 보게 하니 12개중 두어 개만 맞다.
'엥? 이게 어찌 된 일?...'
알고보니, 그냥 통으로 12개의 단어를 순서대로 사진을 찍듯 익힌거다.
그러니 그대로~ 순서대로 부르면 다 맞고, 순서를 바꾸면 고뇌스런 표정을 짓는거다. ...ㅎㅎ 결국 사태파악을 한 아빠는, 아이에게 일단 칭찬을 한 다음, "저 아이가 아직 파닉스를 몰라! 그리고 picture memory를 가진 것 같아..." 라고 살그머니 내게 와서 말한다...
그래도... 가만 두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보다야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선생님들이 오죽 잘 가르쳐주실까 하고선 천하태평으로 두었다... "학교가서 배워~~"


단어 시험을 백점을 받을 수 있게 완벽한 준비를 해 간 것보다는, '마음 깊숙히 지닌 자신감'이 더 빠른 속도를 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더란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지금..당장 외국에서 간 아이가 어떻게 모국어로 쓰는 아이들을 , 그 학제를 꾸준히 해온 아이들을 당장에 당해 낸단 말인가! 하지만, 마음 깊숙이 자리한 자신감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하더니, 나중에 졸업식때 미국 대통령상을 받아와서 우리를 놀래켰다....



한국서 맏이가 초등3학년때 있었던 일이다. 아이가 평균점수 96인지?97점인지? 점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하튼 50명 중 34등의 학급석차를 들고 왔다.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다! 두자리 숫자라니!!^^ 그걸 퇴근한 남편한테 보여주니, 빙그레 웃는다.^^ 살짝 충격받은 내게 그는 말했다.
"점수를 봐! 학업성취도를 봐, 96%의 성취도면, 이 정도면 우수한 편이야! 과외도 하나도 시키지않고 본인의 능력으로 저 만큼 따라간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닌거야. 그저 숫자일 뿐이야. 의미없는 석차라는 순서를 보지말고 성취도를 봐."

"그러네요!!" ^^
"저 아이가 저 학업성취도면 어디를 가도 공부를 잘 해낼거야..."하더니, 아이에게 가서 아빠의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아이도 '학교의 아이들이 하는 무드를 아니까...' 좀 불안한 기색으로 있다가, '수고했어~ '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손길을 받은 순간, 얼굴이 편~안해지던 그 표정!!^^
그 날, 아이의 자신감이 손상받지 않고 자긍심을 남겨준 '아빠의 손길'을 아이는 기억할까 모르겠지만, 어른이던 나는 기억난다.....그 순간, 장차 내가 늘 cool한 시각을 지닐 수 있게한 단초를 남편이 심어준거다!! 감사하다!!^^
맏이에게 '그 순간'을 물어보니 그 느낌이 기억난다 한다. 그렇겠지...^^
맏이는 그 후 늘 자신이 원하는 물에 가서 닿았다. 학운이 늘 좋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봐주는 만큼 믿는 만큼 성장하는지도 모른다!!^^



**
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우리아이들이 다닌 그 학교엘 갔더니...여전히 부모의 치맛바람은 드세었다. 이번엔 바짓바람까지 더해져 있었다! 학교에서 친 시험성적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사색이 되고, 자기들끼리 들리는 풍문으로 '누구는 골프채로 틀린 숫자만큼 맞는대'...부터 시작하여 믿고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돌았다...



**
지금도 여동생과 내가 공부하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서로 기막혀 하며 미소를 짓는다... 여동생이 박사학위를 하던 내내, 내가 내 어머니께 들은 말은 이거다. "쟤는 맨날 어디를 저리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거니? 쟤는 비밀도 많아서 도무지....맨날 전화를 걸어도 안받고 밤에도 맨날 집에도 없고....도대체 무얼 하는거니??"
어느 날, 동생이 엄마 앞에 와서 그러더란다....
"엄마 지난 5년간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박사과정을 마쳤어요!!" 허허허.....

당신이 전문직여성으로서 평생을 사회생활을 하신터라, 내 어머니가 가지신 편견은 "여자는 어쩌든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된장찌게 보글보글 끓이며 퇴근하는 남편을 맞아들이는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잘사는 거"라는 거다.ㅎㅎ
그러니, 중간 중간 딸들이 일을 하러 나가려 하면 잔소리만 왕창 들으니....아예 박사과정 내내 모두에게 비밀로 붙이고 끝나는 날 이야기를 한거다... 나 원 참...

내 어머니의 반응은?
"내가 너무나 신나서 벌떡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였다...
아이쿠~ 참~~ 어쩌라는거신지....원.......



내가 공부할 때도 그러셨다.
"너는 도대체 미국에서 웅크리고 뭐하니? 빨리 한국으로 안돌아오고??..."
나도 가만~ 아무 말도 안했다. 그냥 '웅크리고 있는 거'로 아시라고....
그리고 돌아왔다!!...ㅎㅎㅎ

우리 자매는 모두 소녀가장처럼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처럼 부모에겐 아무런 서포트도 당연히 받지않고 공부란 걸 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나이 40이 되어도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다!! 못내 아쉬워 하며 재미가 꼴꼴 나서....밤잠을 하나도 못자고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계속되어도 '기꺼이' 한다. 그런데 이러자면, 단 하나, 공부에의 싹을 끊어내지는 말아야 한다...어린 시절에 말이다.
이거 어찌 보면 우리어머니가 제일 고단수 아니신가 모르겠다!! 본인이 그리 의도하신 것은 아니겠지만...ㅎㅎ *^^*

참 이글의 서두에 쓰던 막내는 지금, 알림장을 따닥따닥 다 붙여 읽지도 못하게 써오던
우리 막내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는데, 누구 하나 공부를 그리 하라는 이도 없는데, 정말 열심히 한다!! 오히려 말리는데도 한다!!...진심으로 건강이 최고이고 대충 하라는 우리의 말을 '씹으면서'...^^
나는 이 단어가 chew인 줄 알았다가... 무시하다 ignore이란 뜻이라 하여 놀랐다.ㅠㅠ 점점 한국어도 바뀌고 있다...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다!!




오늘도 멋지고 신나고 좋은 하루 되시길...

휴식; 페낭#2 여행

책읽을 공간

책읽는 공간의 왼 편.
아주 빛 고운 빨강의, 대나무 같이 생긴 나무.
잎들이 어찌나 싱그러운지...
잎 하나가 방석보다 더 큰...

연두빛이 아름다운 나라.


책읽는 공간의 오른 편
brown쿠션의 이 의자에 앉아
담소를...


산책로


잎이 마치 꽃처럼 붉게 변하는 나무
담으로 쳐놓은 집이 많았다.


이 길을 걸어가서 닿는 곳은 이 곳
'氣'



나무가 흐드러져서 그런가...
목재로 된 집이 깊고 운치가 있는 곳이 많다!!
들어서는 순간
그윽하고 잔잔하고 깊게 가라앉는 휴식같은 느낌...


해질녘..
페낭 할아버지의 텐트에서
왼 편으로 바라본
일몰


현대인에게 휴식은 절실한 것!!
저 휴식같은 의자에 평안히 쉰 후처럼,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시길... 이 의자색깔을 좀 브라운으로 바꿔주면 좋을걸...
직접 가시려면 적어도 10시간은 걸리니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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